놀란의 〈오디세이〉 보고 그리스가 궁금하시다, 다음 목적지는 공연장입니다
스크린에서는 오디세우스가 10년의 귀향길에 올랐고, 무대에서는 테베의 병사와 오이디푸스가 관객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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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주제
트로이 목마가 다시 극장가를 점령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8월 5일 국내 개봉한 뒤 단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8월 8일 기준 글로벌 흥행 수익도 9억3,900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높이 10.7m의 트로이 목마를 실제로 만들고, 고대 방식의 배를 바다에 띄우고, 18m가 넘는 키클롭스를 기계식 인형으로 제작하는 등 신화를 최대한 ‘진짜 세계’처럼 구현한 것도 화제가 됐습니다. 영화의 출발점은 약 3천 년 전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10년의 여정입니다. 맷 데이먼이 오디세우스를 맡았고, 영화는 작품 전체를 IMAX 필름으로 촬영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디세이〉를 보고 “그리스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다음 영화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서울 공연장을 살펴보면, 이미 고대 그리스에 들어가 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 ⚔️ 대학로에서는 〈이올라오스〉, 신화가 아니라 ‘실제 고대 그리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연극 〈이올라오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디세이〉나 〈오이디푸스〉와 달리 이 작품의 중심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라는 것입니다.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와 실제 고대 그리스 테베의 정예부대 ‘신성부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연인 150쌍, 300명의 병사로 구성됐다고 전해지는 부대를 바탕으로 멜라스·아가토·피론 세 사람의 사랑과 신념, 전쟁을 그립니다. 현재 9월 6일까지 공연이 이어집니다. 제목 ‘이올라오스’는 헤라클레스 신화에서도 등장하는 이름이지만, 작품에서는 신성부대의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장소와 상징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신들이 직접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니면서도 신화와 역사, 고대 그리스의 가치관이 맞닿아 있는 작품입니다. 놀란의 〈오디세이〉가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바라본다면, 〈이올라오스〉는 전쟁이 시작될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남기로 한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것도 묘한 대비입니다. ━━━━━━━━━━━━━━ 👑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오이디푸스〉, 가장 유명한 그리스 비극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고대 그리스가 세종문화회관에 있습니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그 운명을 완성하고 마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 이미 결말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이디푸스 자신만 진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긴장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가 아니라 “그는 언제 자신의 진실을 알아버릴까?”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최수종과 양준모가 오이디푸스를 맡고, 서영희·임강희가 이오카스테, 박정자와 남명렬 등이 함께합니다. 7월 4일 시작해 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됩니다.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가 신들이 만든 장애를 뚫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사람이라면, 오이디푸스는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같은 고대 그리스지만 영웅을 바라보는 방향부터 완전히 다릅니다. ━━━━━━━━━━━━━━ 🏛️ 그런데 올해의 ‘그리스 시즌’은 사실 가을부터 더 커집니다 확인해보니 〈이올라오스〉와 현재 공연 중인 〈오이디푸스〉로 끝이 아닙니다. 올가을부터는 국립극단이 아예 테베 왕가 전체를 무대로 불러냅니다.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소포클레스·아이스킬로스·에우리피데스 등 고대 그리스 비극을 바탕으로 테베라는 도시와 한 왕가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다시 쓰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해 〈프롤로그/디오니소스〉와 〈라이오스〉를 선보였고, 올해는 남은 세 작품이 연이어 공연됩니다. 9월 24일부터는 〈안트로폴리스Ⅲ-오이디푸스〉가 시작됩니다.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인 〈오이디푸스〉와 같은 신화에서 출발하지만,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현대적 재창작과 강량원의 연출을 통해 완전히 다른 오이디푸스를 만나게 됩니다. 10월 28일부터는 시선이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에게 이동합니다. 〈안트로폴리스Ⅳ-이오카스테〉는 에우리피데스의 〈페니키아인〉과 아이스킬로스의 〈테베를 공격하는 일곱 용사〉에서 영감을 얻어, 오이디푸스 이후 왕위를 둘러싸고 충돌하는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의 비극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12월에는 〈안트로폴리스Ⅴ-안티고네/에필로그〉가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가 국가의 명령과 자신의 윤리 사이에서 선택하면서 테베 왕가의 비극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즉 올해만 따라가도 오이디푸스 → 이오카스테 → 안티고네 한 가족의 비극을 거의 연속극처럼 이어서 볼 수 있는 셈입니다. ━━━━━━━━━━━━━━ ▶ 〈오디세이〉와 〈오이디푸스〉는 같은 세계일까? 직접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두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과 인간, 운명과 선택을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대한 서사 세계에 속합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갑니다. 안티고네는 국가의 법과 자신의 신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합니다. 〈이올라오스〉의 병사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실제 전쟁터에 섭니다. 시대도 인물도 서로 다르지만 결국 계속 반복되는 질문은 비슷합니다.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인간의 선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전쟁과 권력 앞에서 한 개인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수천 년 된 이야기가 2026년 영화와 공연에서 동시에 살아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 🎬 스크린에서 시작해서 무대로 이어지는 ‘그리스 관극 코스’ 지금 시점에서 성인 연극·뮤지컬을 중심으로 확인하면, 바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이올라오스〉와 〈오이디푸스〉가 가장 뚜렷합니다. 그리고 9월부터는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가 〈오이디푸스〉, 〈이오카스테〉, 〈안티고네/에필로그〉로 연말까지 그 흐름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올해는 꽤 재미있는 순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영화관에서 오디세우스의 바다를 건너고, 대학로에서 테베의 병사들을 만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오이디푸스의 진실을 지켜본 뒤, 가을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테베 왕가의 몰락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 놀란의 〈오디세이〉가 고대 그리스에 다시 관심을 붙였다면, 올해 공연계는 그 호기심을 이어가기 꽤 좋은 타이밍입니다. 약 3천 년 전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2026년의 스크린과 무대에서 동시에 관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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