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박소담, 이유영, 안은진, 김성철, 이상이. 이름만 늘어놓아도 화려합니다. 그래서 유독 ‘전설의 학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10학번입니다. 그런데 2024년 4월 29일, 안은진 배우가 SBS 파워FM 〈박하선의 씨네타운〉에 출연했을 때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받았습니다. 한예종 10학번 중 아직 소문나지 않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배우가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안은진 배우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이휘종이었습니다. “너무 많은데 그중에 갑자기 생각나는 친구는 이휘종이다.” 당시 안은진 배우는 넷플릭스 〈종말의 바보〉 공개를 맞아 김윤혜 배우와 함께 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였습니다. 이휘종 배우 역시 〈종말의 바보〉에 함께 출연한 한예종 동기였습니다. 이미 수많은 배우가 스타가 된 그 10학번 안에서도, 안은진 배우가 굳이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배우’로 그의 이름을 꺼냈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2026년, 연극 〈알테르 에고〉에서 이휘종 배우를 보고 나니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 〈알테르 에고〉는 사실 조금만 잘못하면 지루해지기 쉬운 작품입니다. 심리 분석이라는 미명 아래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과거와 상처, 기억을 꺼내놓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또 설명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무대 위 사람들이 돌아가며 긴 자기소개를 늘어놓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휘종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 ‘설명’이 사람이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인격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나눕니다. 처음에는 목소리와 말투가 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표정이 다르고, 눈을 쓰는 방식이 다르고,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몸을 세우는 자세가 다르고, 심지어 그 인물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까지 달라집니다. 같은 얼굴이고 같은 몸인데, 이상하게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습니다. 단순히 ‘연기 톤을 바꿨다’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인격 정도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영혼 하나하나가 전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배우가 “지금부터 다른 인격입니다”라고 친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관객이 구분하려고 노력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이 무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몇 번째 인격인지 세는 것도 그만두게 됩니다. 그저 이휘종 배우가 다음에는 어떤 사람으로 변해 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 공연 중간에는 대사가 잠시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라이브 무대이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수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는 그 이후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흐름이 흔들릴 법도 했지만, 곧바로 다시 극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면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집중력이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더 강하게 몰입하게 됐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연기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이 배우는 멘탈까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극이 끝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정확한 관극 후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끊임없이 심리를 설명하고, 기억을 이야기하고, 자기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극인데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이휘종 배우가 다음 순간에는 어떤 표정으로 변할지, 어떤 자세로 서 있을지, 또 어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날지가 궁금해서 계속 무대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배우가 여러 역할을 잘한다는 말은 흔합니다. 하지만 〈알테르 에고〉에서의 이휘종 배우를 보고 나니 그 표현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여러 사람을 잘 흉내 내는 배우가 아니라, 각각의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부터 새로 만들어내는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말 다른 영혼을 넣어놓은 것 같은 배우였습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에는 작품만큼이나 한 사람이 궁금해졌습니다. 이휘종 배우는 다른 작품에서는 대체 어떻게 연기할까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2년 전 안은진 배우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스타 배우를 배출한 한예종 10학번 가운데 아직 더 주목해야 할 배우를 묻는 질문에 안은진 배우가 떠올렸던 이름. 이휘종. 〈알테르 에고〉를 보고 나니, 왜 그 이름이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알테르 에고 (Alter Ego (s) )
2026-09-06 ~ 2026-11-22 프랑스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관객을 매료시킨 실화 바탕의 웰메이드 심리 스릴러 연극